또 일기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본문

영일 글/설교.묵상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사또2 2017. 6. 25. 01:52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들으신다.

 

23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24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25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위 본문은 출애굽기 서문을 마치며 정리하는 글이다.

1.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이 죽을뻔한 이스라엘 아이를 살려내고 지은 모세의 이름 뜻이다.

이집트 왕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동력의 댓가 없이 종으로 부리며 오로지 이집트만을 위해, 더 나아가 자신만을 위해 일하게 했다.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해하며 강제노동을 시켜 짓누르며 괴롭혔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많은 고통으로 일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며 힘들게 일하는 만큼 자손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마치 지금시대에 먹고 살만하며 시대를 아는 사람들은 자식을 낳지 않지만, 모르고 어려운 사람들이 계속 낳는 것과 같았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무 힘이 없었다. 무기도 없고 식량도 그 어떤 힘도 없어서 싸울수 없었고 시키는 일만 할뿐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위협을 느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고 자신의 위협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많아 지지않을지 생각한 후에 결정을 했다. 그 방법은 잔인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뿐 아니라 이번에는 생명에 손을 댄다. 바로는 이스라엘 아이가 태어날 때 산모를 돕고 아이를 받아주는 산파에게 아이가 태어날때 사내 아이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바로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용한다.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위협이 느껴지니 사람의 생명까지 손을 대게 된다. 자신이 신이며, 자신이 최고이다.

산파들은 바로의 명령이 무서웠다. 평소에 아이가 탄생할때 고통과 신음으로 고생하던 산모를 보왔고, 그 산모를 통해 작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를 신께 감사드렸을 것이다. 그 생명의 신비의 주인공인 아이를 죽이는 일을 자신에게 하라는 명령이 산파들은 불편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곧 신의 명령이다. 따르지 않으면 죽게되며 왕의 말이 곧 법이고 어기면 목숨을 거는 일이다.

명령이 내려진 후, 산파들은 이스라엘 산모가 아이를 낳을때 도우며 아이를 보았다. 산파들은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이 있었지만, 죽일수가 없었다. 생명의 신비를 보며 아이를 보며 자신을 보며, 또한 신 앞에 할수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죽이지 못했다.

소문을 들은 이집트 왕 바로가 산파들을 호출했다. 왕에게 오라는 명령이었고, 아마 사내아이를 죽이지 않은 일을 들킨게 틀림없다. 산파들은 뭐라고 말할지 걱정이 되었고 한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는데도 아이를 많이 낳기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힘이 아주 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산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산파들은 바로왕의 " 왜 사내 아이를 살려두었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이스라엘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 달리 힘이 아주 좋아서, 위급하다고 할때 산파들이 출발하면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아 버립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이 죽을뻔한 이스라엘 아이를 살려내고 지은 모세의 이름 뜻이다.

그 전에 산파들은 죽을뻔한 이스라엘 사내들을 살렸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산파들에게 사내 아이가 탄생하게되면 모두 죽이라고 했다. 왕의 명령이다. 그러나 산파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명령에 불복종했다. 그들은 당연히 살게 될줄 알았을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왕의 명령에 불복종 할수 있었을까? 그 용기는 도데체 무엇일까? 우리도 그렇게 할수 있을까? 우리는 다 옳은 일이라서 늘 복종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복종하면 안된다는 일을 복종하면서, 나보다 아래사람,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등 주변사람에게도 복종하라고 할때도 있지는 않을까? 그런데 이 산파들은 어떻게 목숨의 위협에서도 왕의 명령에 불복종 할수 있었을까? 

2. 이스라엘의 레위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여자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들 세달간 몰래 숨겨셔 키웠습니다. 숨겨서 키우는 이유는 바로왕은 산파가 살려두었던 사건 후에 더욱 감시를 시켜서 사내아이는 실제로 모두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숨길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갈대로 만든 작은 바구니 배를 구한후 후, 역청과 송진으로 물이 새지 않게 바르고, 그 속에 아이를 뉘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바구니를 강가에 띄웠습니다.

바로의 딸은 어려움없이 살았을 것이다. 남들과 비교되는 풍족한 음식과 넓은 집, 높은 교육과 많은 시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바로의 딸은 시녀들과 어느날 강가에 갔고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강가를 걷는데 강의 갈대사이에 바구니 배가 보여서 시녀에게 가져오라고 했고 그 바구니에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바로의 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한건 자신의 아버지이다. 손으로는 죽이지 못하고 어쩔수 없지 강에 떠내려보대는 이스라엘 사람들. 바로의 딸은 이 아이를 보고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불쌍한 마음이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바로의 딸은 직접 이렇게 버려진 아이를 보기 전에는 이런 마음과 생각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냥 다른나라 아이이고, 그 나라는 우리나라의 종이며, 사람 한두명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의 딸은 나일강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연히 아이의 어머니를 데려올수 있게 되어서 아이의 어머니를 데려오게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보고도 싶었으며, 사내아이를 몰래키웠기에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의 딸은 아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데려가서 나를 대신해 젖을 먹여주게. 내가 자네에게 품삯을 주겠다."

아이의 어머니는 사실 아이를 데려가라고 해도 데려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사내 아이를 키울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의 딸은 자신을 대신해서 젖을 먹여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품삯을 준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바로의 딸의 일을 해주는 것이 되었다.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기분이 어땠을까? 부모로서 자식을 버리게 되는 슬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사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죽이게 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 죽이기 싫어서 몰래키웠으나 더이상 주변에 들키게 되는 상황이 되어서 강가에 버리게 되었다. 죽이라고 하던 바로왕 때문에 자녀를 버리게 되었는데, 그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해 키우라고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어머니는 젖을 먹이고 사랑을 먹이고 눈물을 먹였을 것이다.

젖을 뗀 뒤에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왔다. 바로의 딸은 그 아이를 보고 기뻐하며 아들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했다.

바로의 딸은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서 살렸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산파들에게 명령했었다. 그러나 바로의 딸은 이스라엘 사내아이를 살렸다.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은 바로 왕과 지내며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였을 것이다. 이때의 시대에는 국민과 왕족은 구분이 확실한 시대이다.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은 공주로 지내며 국민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지냈을까? 시녀와 함께 생활하며 바깥생활에 대해서는 모르던 바로의 딸일 것이다. 그러한 이집트 왕의 딸이, 이스라엘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며 돕고 싶고, 독립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기는 너무나 희박하다. 그거에 이집트를 위협줄 것 처럼 많은 인원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그 피해를 위해서라며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그 상황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을, 그리고 사내 아이를 어떻게 봤을까?

민주주의 국가라하는 미국에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된게 언제일까? 공식으로는 1870년에 통과시켰지만, 노예해방을 반대했던 남부 주에는 참여를 제한하였기에 참정권을 재대로 줬다고 볼수 없다. 1965년 3월에 흑인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크게 행했고, 1965년 8월에 차별할수 없으며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2017년 지금 한국사람들은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은 어떻게 대할까? 이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회사와 공장에서 어떻게 대할까? 종이 아닌 이주민들에게도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고 있는게 2017년도의 현실이다. 뿐만아니라 최근의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최고 권력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의 구조할수 있는 중요한시간의 허비로 인해 볼수 있었던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귀히 여기지 않는지를 보았다. 또한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부정청탁의 모습을 보며 많은 부와 권력이 세상에 얼마나 무너지며 낮은 도덕성과 사람을 개돼지로 여기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아마 몇 천년 전의 최고의 나라였던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은 이스라엘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그리고 이스라엘 사내를 생명으로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의 딸은 직접 그 사내 아이를 보고 그 사내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서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살려서,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냈다"라고 말하며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다.

3.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간 후 미디안에서 아이를 낳으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은 아들 "게르솜"의 이름 뜻입니다.

4. 만복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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