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영일 글/신학 (3)
또 일기
복음주의 노선에서 변증가, 마치 예전의 존스토트 정도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의 신학이다. 영혼구원와 사회구원를 말할때, 사회구원은 복음이 아니라고하며 영혼구원을 강조한 입장.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강조를 하며, 사회구원인 삶과 사회구조는 뒤로 하는 신학이다. 사회구원과 삶없는 복음때문에 선교와 신학에 반성을하고 균형된 믿음과 삶, 영혼구원과 사회구원, 인간뿐 아니라 만물의 구원 곧 포괄적인 하나님나라를 말했다. 그러나 그에 반대하고 영혼구원만 강조한 노선이다. 어찌보면 예전에 겪었단 연합없는 선교, 식민지방식의 선교, 사회적 책임없는 신앙생활을 되돌려서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 신앙이다. 사회적 책임없이 영혼구원을 강조하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유익을 취하여 약자를 약탈하고 배..
내가 기독교를 선택하고 살아간지 19년 정도되는 시점에서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어릴 때 내가 기독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19세 때 교회를 선택하고 의지를 가지고 기도하며 생활한 이유는 내 안에 가득담긴 때(죄)와 그동안 내가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새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19세 때부터 20대 중후반 까지 그 삶을 달려오며 그동안 듣지 못했던, “착하다”, “성실하다”, “잘한다”의 칭찬을 계속들으며, 그것이 신의 칭찬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마치 나는 유대인 기독교(토종 기독교, 예를 들면 모태신앙)가 아닌데 유대인 기독교들과 어울릴 때 생기는 거리감이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가정이 아니었고, 교회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교회에 길들여진..
지난주에 장신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모두의 예배”에 한시간 늦게 참여했다. 모두의 예배는 “성소수자도 함께 한다”는 의미와 “암 하레츠를 징계준 사건” 등의 문제가 담겨있는 예배로 기획된게 아닐까싶다. 그 예배가 기사로 나왔는데, 그 글을 읽고도 내가 우리교단에서 목사가 되어야하나 갈등된다. “모두의 예배”와 같은 예배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그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목회가 과연 무엇일까 싶다. 목사고시를 준비하되, 면접에서 묻는다면 솔직하게 말해야하지 않을까 고민된다.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냐?” “교단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세계는 다 이해할수 없다. 나도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를하고 교회활동을 하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실수이며, 신에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