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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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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1/4)

사또2 2016. 3. 10. 23:23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110p까지>


"이 허무한 가상 속에서 상당한 분량의 위로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상에 의탁한 위안이 허무한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의 가상이 무너질 때, 허황한 착각에서 깨어날 때, 퍼뜩 제정신이 들 때, 우리는 다시 침통한 마음이 됩니다. 이를테면 자물쇠 채우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귓 전을 칠 때, 또는 취침 나팔의 긴 여운이 울먹일 때, 또는 잠에서 막 깨어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때에는 어김없이 현실의 땅바닥에 떨어져버린 한 마리씩의 깃이 젖은 새처럼 풀죽은 꼴이 됩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과 땅 사이를 배회하는 가상 속에서 오히려 옥살이라는 고통과 위로를 혼동하며, 고통이든 위로든 그것을 애매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中 p57>


군대에서 이병으로 있을때 정신없는 파출부 같은 생활을 했다. 해병대에서 이병은 발이 보이면 안되고, 땀이 멈추면 안되고, 배가 안고프면 안된다. 그것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편했다는 증거로 선임들에게 보이게 되었었다. 매일 내무실 닦고, 물 떠오고, 먼지 제거하고, 선임 워커털고, 옷걸이 정리하고, 어쩌다가 할 일이 없어도 만들어서 늘 하다보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밤이 오곤했다. 잠 자기 전에 침상 모포에 앉아 순검(점호)을 대기하고 있으면, 하루를 생각해보는, 유일한 1분에서 2분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너무 피곤해 하다가 취침시간이 되어 눕게된다. 곧 하루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눕게 되는 매일의 하루가 이병의 하루다. 그 밤에 이렇게 간절한 소망의 기도를 하다가 잠에 들곤 했다. "하나님 정신없고 너무 힘듭니다. 내일 아침에는 이병의 짝대기 하나가 네개의 짝대기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믿고 일어나서 짝대기를 확인해보나 그것은 바랄수 없는 기도였고, 짝대기는 한개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과 땅사이를 배회하는 가상 속에서 오히려 옥살이라는 고통과 위로를 혼동하며, 고통이든 위로든 그것을 애매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자꾸만 밑이 꺼지는 공허를 어쩔 수 없습니다. 진흙바닥에 발이 박혀서 신발마저 뽑아내지 못한 채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中 p57>


기다린다. 봄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 희망이 생긴다. 

감옥은 겨울이다. 넘어갈 벽이 너무나 높다. 너무 춥고, 덥다. 비가 온다.

저항한다. 책을 읽는다. 붓글씨를 배운다. 편지를 쓴다. 축구를 한다. 나도 일이 있다. 생각하는 습관. 

함께 해야 한다.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 위로의 편지가 아니라 관계의 편지를 쓰자. 내가 가족을 돌본다.


희망을 갖고, 희망을 잃고, 그러나 다시 희망을 갖고, 반복되는 생활에서 선생님은 비가오고, 과거가 생각나고,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끝내 신발을 뽑아내지 못했었다. 울음을 터뜨렸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의 희망은 '허무한 가상'이 아닌가. 제 정신을 차리면, '허무한 착각'이다.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방안 가득히 반짝이는 이 칼끝 '빙광'이 신비스럽다. 나는 이 하얀 성에게, 실은 내 입김 속의 수분이 결빙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내뿜는 입김 이외에는 얼어붙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공의 성좌 같은 벽 위의 빙광은 현재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세계'이다.<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中 p21>


나는 숨을 쉰다. 내 숨으로 나를 데운다. 나는 책을 보고 생각한다. 현실을 저항한다. 

내 숨은 춥고 죽음같은 감옥 안에서 빙광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보여준다. 나의 책을 보며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저항하고 일어설 힘을 준다. 가장 큰 세계가 열릴 것이다.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中 p103>


지금은 부모님의 편지가,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책이, 나에게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도 스스로 아름답게 자랄수 있습니다.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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